문윤국(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나무위키

문윤국 - 나무위키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 개요[편집]

禱天設誓向南雲이라 在生當作民權黨이오、寧死언뎡 不隨傀儡群。
해석남녘 구름을 바라보며 하늘에 기도하며 맹세하건대 살아서 민권당이 되어야지, 차라리 죽을지언정 괴뢰의 무리를 따르지 않으리라.


문윤국의 친필 유서(1954) 중에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기독교 장로회 목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교주 문선명의 작은할아버지, 즉 막내 종조부이다.

2. 생애[편집]

1877 음력 1월 30평안도 정원현( 평안북도 정주시) 덕달통 이리 문촌(文村)에서[3] 문정흘(文禎紇) 연안 김씨 김유환(金有煥)의 딸 사이의 3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자매로 맏형 문치국(文致國)과 둘째 형 문신국(文信國), 그리고 차방윤(車方允)과 홍준구(洪俊九)에게 각각 시집간 누이 2명이 있었다.

그는 1898~1901에 유학자(儒學者)인 일암(一菴) 백예행(白禮行)[4] 문하에서 한문을 배웠다. 그리고 1902~1908 정주군 덕언면 덕흥동의[5] '덕흥의숙'(德興義塾)에서 한문 교사로 일했다. 또한 1911~1912에 정주군 정주읍의 '신안소학교'(新安小學校)에서 교사로 일했다.

이후 전주 이씨 이학수(李鶴洙)의 딸과 결혼하여 슬하에 문경운(文慶運)[6], 문경호(文慶浩)[7] 등 두 아들을 두었고, 이후 월남한 뒤 이복아들인 문경봉(文慶鳳)을 얻었다.

그는 이승훈이 정주에 오산학교를 지을 때, 적극 지지해줬다고 한다.[8]

1910 
기독교 장로회에 입교하였다. 또한 1913평양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17 11회로 졸업하였다. 이후 목사 안수를 받아, 정주군 덕언면 덕흥동의 덕흥교회,[9] 덕언면 덕성(德星)동의 덕성교회, 정주군 신안면(新安面)의 연봉(蓮峰)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일했다. 그리고 정주에서 목사로 시무하던 중1919 3.1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는 3.1 운동 당시 정주군 아이포면사무소 뒷산에서 독립선언을 했으며, 정주군 일대의 시위를 주도했다. 때문에 그는 일제 경찰에 죽창으로 세 곳을 찔리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 
기독교장로회 평북노회(平北老會) 조선독립운동 발기인으로서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에 전국 13도 대표 중 한 명으로 서명했다고 그의 유서 《학업과 경력》에 나와있다.

민족대표 33
의 초기 구성원으로서 독립선언서 초안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승훈 장로가 문윤국에게 거사가 실패할 경우 뒷일을 부탁한다고 하여 문윤국은 33인에서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문윤국 대신 이명룡 장로와 김병조 목사가 33인에 들어갔다고 그의 유서에 나와있다.

1921
에는 고향 정주의 일가 친척들과 교회 신도들을 설득하여 당시 돈 7만 원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만주의 김숙제(金肅濟) 목사를 통해 모두 상해 임시정부의 자금으로 보냈다.

이후에 일제에게 주요시찰인물로 지정되자 1927부터 가족을 두고 홀로 충청북도 천안군 직산면(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강원도 강릉군( 강릉시옥계면 등을 전전하며 은둔생활을 했다.

해방 후1946부터는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장열리에 정착하여 제자들에게 한학(漢學)을 가르쳤다. 그는 생전에 130여 편의 한시(漢詩)를 지었고, 그 시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1948
에는 소위 공산당 빨갱이로 몰려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워낙 문윤국이 조용히 살다보니 해방 이후 이 때 처음 사는 곳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장열리 맞은 편 '항골'이라고도 불리는 북평5리 노루목의 외딴 곳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다 1958 1월 2 병으로 사망하였다.

문윤국의 일가 친척들은 그가 죽고나서도 그가 어디에 있으며 생사도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사실 일가 친척이라 해봤자 남한에는 현재 문선명과 문용기(文龍基) 두 사람 밖에 없다. 그러던 1966 문윤국의 종손자(從孫子) 문용기의[10] 꿈에 문윤국이 나와 그가 살던 강원도 정선의 주소를 문용기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선에 연락하여 문윤국의 제자들과 유서, 유해를 찾았다고 한다. 이후 문윤국의 유해는 1970 경기도 파주시 통일교 성지인 '파주원전'으로 옮겨졌다.

문윤국의 맏형이 문치국이며, 문치국의 장남이 문경유(文慶裕)[11]로 문경유의 차남이 바로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다. 즉 문윤국 입장에서, 맏형의 장손자가 문선명이다. 문선명과 촌수로는 4촌 관계이며, 문선명 입장에선 작은할아버지이다.

대한민국 정부
는 문윤국에게 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