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의혹은 빙산의 일각(시사IN)
꼬리 무는 건진법사 의혹,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
암호화폐 시세조종 의혹 수사 과정에 뜻밖의 이름이 등장했다. 무속
비선 논란으로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건진법사 전성배씨다.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 2025.05.20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647
문상현 기자
등장부터 화려했다. 새 암호화폐가
‘욘사마 코인’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배우
배용준씨가 투자했다고 알려지면서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암호화폐 시장에 유명 연예인 이름이 오르내리자
상장 첫날부터 가격이 치솟았다. 하지만 이 암호화폐는 불과 1년
만에 디지털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다. 시세조종 의혹이 불거져 상장폐지됐다.
금융범죄 중점 검찰청인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가상자산합동수사단이 수사에 착수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가상자산 시장 보호정책의 일환으로 2023년 7월 검찰·금융감독원·금융정보분석원·한국거래소·국세청·관세청·예금보험공사 7개 기관 전문인력
30여 명이 모여 출범한 대규모 수사단이었다. 검찰 수사 결과,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욘사마 코인’의 실질 운영자 A씨를 비롯한 4명은 2024년 7월19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피해자 약 1만3000명, 피해 금액은 301억원이었다. 실질적
운영자 A씨에게서만 56억원 규모의 횡령 정황이 드러났다. 그의 자금 흐름을 추적해야 했다. 그런데 검찰은 추적 과정에서 뜻밖의
이름을 확인했다. 2022년 1월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정·관·재계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건진법사, 전성배씨였다.
2024년 12월17일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은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욘사마 코인’ 실질적 운영자 A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한 정 아무개씨를 전성배씨에게 연결해줬고, 정씨가 전씨에게 공천 청탁 명목으로 1억원을 건넨 사실을 확인한
직후다. A씨는 검찰에서 자신이 “건진법사에게 건너간 자금을
후보자(정씨)와 함께 마련했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정씨는 유력 정치인들을 많이 아는 전성배씨가 자신의 공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돈을 건넸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돈의 최종 목적지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그러나 돈은 윤
의원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정씨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정씨는
검찰에서 공천 탈락 후 전성배씨로부터 돈을 그대로 돌려받았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전성배씨 역시 “공천에 실패한 뒤 돈을 돌려줬기 때문에 문제 될 일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성립된다고 보고 올해
1월 불구속기소했다.
전성배씨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수사는 오히려 확대됐다. 검찰이 전씨를
긴급체포한 날 그의 자택과 법당·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는데,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수상한 정황이 추가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김건희씨가 연루된 새로운 청탁 흔적이었다. 4월30일 윤석열의 자택을 대상으로 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 과정에서
이뤄졌다. 금융범죄를 주로 수사해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이 권력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이 사건 수사를 맡았다.
전성배씨 압수물을 통해 드러난 여러 수상한 정황 가운데 검찰이 최근 수사에 속도를 내는 사안은 통일교 2인자 윤 아무개-전성배-김건희로 연결되는 청탁 의혹이다. 〈시사IN〉 취재와 윤석열 부부 자택 압수수색 영장을 종합하면, 검찰은 전성배씨와 윤 아무개씨가 2022년 4~8월 김건희씨에게 선물과 함께 5가지 내용의 통일교 현안을 전달했다고 의심한다. △캄보디아 메콩강 핵심 부지 국가 단위 공적개발원조(ODA) 연대 프로젝트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유치 △제20대 대통령 취임식 초청 △통일교 국제행사 ‘서밋 2022&리더십 콘퍼런스’에 교육부 장관 초청 청탁 등이다.
5가지 청탁 내용 중 대통령 취임식 초청과 교육부
장관 행사 초청 청탁을 제외한 나머지 3가지는 모두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사업이다. 검찰은 윤 아무개씨가 전씨를 통해 김건희씨 측에 영국 브랜드 ‘그라프(Graff)’ 사 6000만원대 목걸이와 샤넬 백, 천수삼농축차 등을 전달하며 청탁했다고 보고 있다.
청탁 의혹의 핵심은 2022년이다.
같은 해 2월13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롯데 시그니엘 호텔에서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을 만났다. 당시 박진 전 국민의힘 의원(당시 선대본부 글로벌비전위원장)과 조태용 당시 선대본부 글로벌비전위원회
부위원장, 김성한 당시 캠프 외교안보정책본부장이 함께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외교부 장관(박진), 국정원장(조태용),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김성한)을 맡았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 자리에서 통역을 맡은 인물이 통일교 2인자 윤 아무개씨의 비서실장이었다. 펜스 전 부통령의 한국 방문
목적부터 통일교 행사(한반도 평화서밋, 2022년 2월11~13일) 참석을
위해서였다. 펜스 전 부통령과 윤석열의 만남을 주선한 게 통일교였다.
2022년을 재구성하는 검찰
윤석열이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2022년 5월 하순, 통일교 공식 행사에 참석한 윤 아무개씨가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2022년) 3월22일 대통령(당시 당선자)과 1시간가량 독대했고 많은 얘기가 있었다. 통일 세계를 위해 재정 확보가
중요하고 그 방식이 ODA인데, 거기에서 (윤석열 측이) 동의한 내용들이 있었다.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라고 주장했다. 펜스 전 부통령과 회동한 이후, 윤 아무개씨가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던
윤석열과 독대해 ODA 사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취지다.
이후 2022년 6월
외교부는 캄보디아와 ‘ODA 통합정책협의회’를 개최해 2016~2023년 7억 달러 수준이었던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 지원
한도액을 2022~2026년 15억 달러로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차관 지원 한도액은 한국 정부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해 장기·저리
조건으로 빌려주는 자금의 한도액이다. 차관 지원 한도액이 늘어난
2022년 6월은 윤 아무개씨가 윤석열과 독대하면서
“ODA와 관련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라고 주장한 지 한 달 뒤다.
검찰이 윤석열·김건희 부부 자택을 압수수색하며 영장에 적은, 목걸이와 샤넬 백 등 선물을 전달한 시점은 2022년 4~8월이다. 윤 아무개씨는 이 시기 전성배씨에게 “여사님께서 물건 잘 받았다고 한다”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라는 등의 문자를 보냈다.
유엔사무국(본부) 한국
유치 사업은 통일교 숙원 사업이었다. 통일교는 “전 세계 4곳(미국 뉴욕, 스위스
제네바, 오스트리아 빈,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유엔사무국을 아시아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에 유치해야 한다”라고
주장해왔다. YTN은 윤석열 정부가 취임 첫해부터 민영화를 추진했다.
2022년 11월 기획재정부가 공기업의 YTN 지분을
전량 매각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정부가 주도했다. 지분을 사들여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최종 승인을 받는 절차가
필요했다.
검찰은 2023년 6월1일 윤 아무개씨가 통일교 핵심 관계자와 “YTN을 4000억원에 사려고 했다. 그래서 방통위 쪽 ‘윤핵관’ 의원들을 만났다”라는
등의 대화를 나눈 전화 통화 녹음파일을 확보했다. 윤 아무개씨는
YTN 매각이 공식화된 2022년 11월 이전부터 ‘통일교가 방송국을 사려고 한다’는 뜻을 주변에 내비친 것으로도 알려졌다.
다만 윤 아무개씨 청탁이 실제 이행됐는지는 수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통일교의
메콩강 개발사업은 윤 아무개씨가 2023년 5월 통일교에서
면직되면서 보류됐다. 통일교는 이 사업 자체를 윤 아무개씨가 독자적으로 추진해왔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엔사무국 유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통일교는 “한국 정부만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통일교 총재 일가가 세운 법인인 글로벌피스재단이 YTN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최종 승자는 유진그룹이었다. 글로벌피스재단은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 총재의 3남 문현진씨가 이사장인데, 2012년부터
통일교와 금전 문제 등으로 수십 차례 소송전을 벌이면서 교류를 끊은 것으로 확인됐다. 양측 관계자들은
〈시사IN〉에 “통일교와 글로벌피스재단은 아무런 관계도, 교류도 없다”라고 전해왔다. 윤
아무개씨는 윤석열의 대통령 취임식에는 초청받지 않았다. 통일교 국제행사에 당시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 아무개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통일교 세계본부장 재직
당시 사업은 모두 한학자 현 통일교 총재(고 문선명 총재의 배우자) 뜻으로, 결재를 받고 실행했다”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교 해명과 달리, 윤 아무개씨가 교단을 위해 사업과 청탁을 진행했으며
총재 결재까지 받았다는 주장이다. 윤씨는 2023년 5월 통일교 2인자 자리인 세계본부장직에서 면직됐지만, 통일교와 교류가 완전히 끊긴 게 아니었다. 그는 3개월 뒤인 8월 통일교 계열 선문대학교 부총장으로 임명됐다. 검찰은 윤씨가 통일교 계열 건설업체 대표와 여러 사업을 함께해왔던 정황도 확인하면서, 통일교 세계본부장에서 면직된 이후에도 전성배씨를 통해 캄보디아 ODA 프로젝트
등 일부 청탁 대상 사업을 계속 이어갔을 가능성을 확인 중이다.
김건희씨 측은 “청탁도, 금품도
받은 적 없다”라는 입장이다. 전성배씨는 검찰에 “목걸이 등 금품을 잃어버렸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건희씨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목걸이와 샤넬 백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검찰은 이 지점에서도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윤 아무개씨와 전성배씨가 공통적으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같은 현안을 두고도 말이 엇갈리는 지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검찰은 윤씨와 전씨의 대질심문도 검토 중이다. 김건희씨에 대해서는 목걸이와 샤넬
백 등 선물을 다른 장소에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4월30일 당시 휴대전화 위치추적보다 주소 및 동호수까지 기록해 더 구체적으로 위치 파악을 할 수 있는 배달 앱을
영장에 기재한 이유다.
이에 대해 김건희씨 측 변호인은 입장문(4월30일)을 내고 “범죄사실에
비해 영장에 기재된 압수할 물건은 거의 백화점 수준으로 포괄적이다. 압수수색 영장이 순수한 수사 목적의
압수수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검찰의 줄서기 또는 전직 대통령 및 영부인에 대한 망신 주기다. 정치적 목적 없이 공정한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인지 현대판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전성배씨를 둘러싼 검찰 수사 범위는 지금보다 더 넓어질 가능성이 높다. 윤
아무개씨처럼 전씨에게 접근한 사람들, 또는 전씨가 접근한 사람들이 수사가 진행되면서 계속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교 의혹은 빙산의 일각
전씨는 2022년 1월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윤석열의 팔과 어깨를 두드리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알려진 인물이다. 당시
전씨가 대선캠프의 ‘네트워크본부’에서 고문 직함으로 활동하고, 김건희씨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의
고문 명함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가 윤석열 부부의 일정부터 캠프 인사와 여러 이권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른바 ‘무속 비선’ 논란이 여기서 시작됐다.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윤석열은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전성배씨와 그 가족의 이름과 영향력은 계속 정·관·재계 안팎에서 거론됐다. 이 문제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전씨와
관련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2022년 8월과 2023년 1월 최소 두 차례다.
2022년 8월에는 전씨가 중견 기업인과의 식사 자리에 한 고위 공직자를 데려와 세무조사
무마를 부탁했다가 적발됐다. 2023년 1월에는 공직비서관실이
전씨 가족들을 찾아가 “전씨와 가족들을 사칭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라며
구두 경고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은 2022년 윤석열 캠프에서 네트워크본부가
해산된 이후 시점에도 전성배씨가 윤한홍 의원에게 선거 전략을 조언하고, 캠프 관계자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지시도 하는 문자메시지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성배씨도 검찰 조사에서 “박근혜 대선 때와 달리 이번 대선에선 조금 본격적으로 움직였다”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전씨가 윤 의원에게 “세 명 중 한 명만
인사가 확정됐다”라고 항의하는 등 본격 인사 청탁에 나선 정황이 드러난 것도 이 시점이다. 다만 윤 의원은 전씨 항의 문자에 “저도 가슴이 답답하다. 밖에서는 제가 인사를 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무런 도움이 못 되고 있으니 죄송할 따름”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건진법사가 저의
이름을 팔아 공천 장사를 했다. 건진법사와 돈거래를 한 사실이 없을 뿐 아니라 공천과 관련해 통화한
사실도 없다. 일부의 진술만을 가지고 그것이 전부인 양 보도한 행태에 대해서 강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라고 주장했다.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성배씨가 경북 지역 출마 예정자 5명에 대해 공천을 부탁받고,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이들을 추천한 정황이 담긴 문자메시지도 검찰이 확보했다.
그러나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문자를 보낸 국민의힘 의원들과는 친분이 없다. 신경 써준 것처럼 보이려 했다”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이 전성배씨로부터 압수한 돈뭉치도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전씨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현금 1억6000만원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5000만원은 5만원짜리 1000장을 다발로 묶어 비닐로 포장한 후 한국은행 도장을 찍은 ‘관봉권’이었다. 관봉권은 조폐공사가 한국은행에 신권을 보낼 때 화폐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보증한다는 의미로, 띠지·비닐 등을 둘러 만든
뭉칫돈이다.
검찰은 최근 문제의 관봉권이 모두 조폐공사에서 한국은행 강남본부로 납품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동안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 등 정부 특수활동비(특활비)가 강남본부 등 서울 지역 본부를 거쳐 지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 자택에서 압수된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다. 윤석열이 취임한 지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주로 기도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히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관봉권이 특활비 등 국가 예산이었다는 것이 확인될 경우에 전성배씨는 물론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겨냥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