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궁: 대리석에 새긴 참아버님에 대한 배신의 상징물 - 유경명

천원궁: 대리석에 새긴 참아버님에 대한 배신의 상징물 

 유경명 (2세 72가정) 


 사랑하는 식구 여러분, 천원궁 입궁식을 접하며, 많은 분들이 다양한 감정속에서 고민하고 계실 줄 압니다. 설렘과 기대, 동시에 당혹감과 의문이 함께 떠오르고 있을 것입니다. “문선명 참아버님께서 그리신 이상이 과연 이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대리석으로 치장된 천원궁이 진정한 섭리의 완성일 수 있는가?” 이러한 고민은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품어야 할 책임 있는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참된 길을 찾기 위한 정직하고 진지한 물음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건축물에 담긴 상징과 의도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건축물로 구현된 부패한 권력자의 환상 


 역사 속에서 건축은 단지 공간을 짓는 것을 넘어, 시대와 지도자의 메지지를 담는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어떤 건축물은 공동체의 영성을 담고, 또 어떤 건축물은 권력의 위상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부패한 권력자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과시적 건축을 통해 자신을 신격화하고, 불멸의 존재로 기억되기를 갈망해 왔습니다. 이러한 건축물은 대개 “나는 이만큼의 업적을 이뤘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과시하려는 목적 아래 세워집니다. 이는 정당성이 결여된 권력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선전 전략입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 칼리굴라는 스스로를 ‘살아있는 신’이라 칭하며, 이를 물리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대리석 신전, 동상, 기념비적 건축물을 무분별하게 세우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위가 신에 버금가는 것으로 보이게 하고, 시민의 숭배를 강요했지만, 결국 내부의 반발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천원궁은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천원궁’은, 겉으로는 ‘하늘 부모님을 모시는 성전,’ ‘참부모님의 위상과 업적’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그 상징구조를 자세히 드려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어찌하여 이곳에서 문선명 참아버님의 존재는 이토록 희미해져 있는가?” 천원궁의 건축 구조와 상징 체계는 문선명 참아버님의 중심적 권위를 철저히 배제한 채, 한학자 총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간 배치, 조형물, 동선, 내부 장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한학자 총재의 신격화된 위상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키기 위해 기획되어 있습니다. 반면, 문선명 참아버님은 한학자 총재를 위한 ‘보조적 인물’로 재서술되어 뒷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신학적 측면에서 한학자 총재가 문선명 참아버님과 단절하고 분열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통일원리와 문선명 참아버님의 말씀에 따르면, 구약과 신약에 뿌리를 두고 메시아는 원죄 없는 남성인 ‘아담형 인물’로 규정되며,1 문선명 참아버님은 ‘제3아담’으로서 절대적, 독보적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메시아적 권위는 아담가정의 두세대에 걸친 실패를 승리적으로 복귀하기 위해 자녀 세대로 승계되어야 하며2, 이는 문현진님을 통해 계승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학자 총재는 이러한 아담형 인물의 권위와 승계 구도를 부정하고, 원리적, 섭리적 근거가 없는 ‘어머니 하나님’과 ‘독생녀’라는 개념을 도입해 여성 중심의 신학 질서를 수립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학의 연속이 아닌 단절이며 새로운 종파의 출현입니다. 

 

이와 같은 시도는 통일원리와 근본적으로 무관하며, 한학자 총재의 자의적 권력 형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천원궁은 이 왜곡된 서사를 시각적으로 고착화하려는 상징적 공간이자, 정당성 없는 권력의 물리적 표상에 불과합니다. 


 이는 역사 속 부패한 권력자들의 전형과 다르지 않으며, 한학자 총재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오만한 환상의 발로이고, 신학적 정통성이 결여된 자신의 권력을 물리적으로 보완하려는 시도에 불과합니다. 


 천원궁이 초래할 안팎의 위기 


 ‘천원궁’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학자 총재의 신학적 이탈, 권력의 시각화, 그리고 통일운동의 정체성과 사명의 근본적 동요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천원궁은 문선명 참아버님으로부터 이어져 온 신학적 전통과 유업으로부터 한학자 총재가 유리되었음을 물리적으로 드러낸 결과물입니다. 이로 인해 통일교는 단지 조직적·재정적 위기뿐 아니라, 존속 가능성 자체에 대한 근본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1. 신학적 정체성의 붕괴로 인한 식구들의 이탈 


 천원궁은 한학자 총재가 문선명 참아버님과의 신학적 연속성을 단절하고, 전혀 다른 신학적 노선을 걷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통일교 지도부는 “참어머님은 참아버님과 일심·일체·일념을 이뤘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이러한 신학적 결별을 식구들에게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태도를 지속해 왔습니다. 더욱이 황진수와 같은 통일교 신학자는 ‘참어머님의 독생녀 신학이 참아버님의 통일원리와 상보적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기만적인 주장을 펼치며 혼란을 가중시켜 왔습니다. 참아버님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참아버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처럼 말하는 이러한 태도는 많은 식구들에게 심각한 혼란과 내적 고통을 안겨줘 왔습니다. 


 독생녀 신학은 통일원리의 핵심인 ‘아담형 인물 중심의 메시아관’ 및 그 권위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신학적 일관성을 무너뜨리는 모순된 주장입니다. 독생녀 신학은 신학적 정합성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채 한학자 총재의 권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기능하고 있으며, 통일원리와 식구들의 신앙 정체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해악입니다. 


 천원궁 건축물이 이러한 왜곡된 신학과 권력의지를 물리적으로 시각화한 공간으로 드러남에 따라 많은 식구들은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한학자 총재의 독생녀 신학이 문선명 참아버님의 메시아적 권위에 대한 부정이며, 그의 생애유업을 파괴하고, 축복가정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이러한 인식은 곧 공동체 내 신뢰의 붕괴와 식구들의 이탈로 이어질 것입니다. 


 2. 재정적 위기와 공동체의 피로 


 천원궁 건축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었으며, 완공 이후에도 상상 이상의 유지·관리 비용이 지속적으로 소요될 것입니다. 이러한 재정적 부담은 한학자 총재의 지도하에 있는 현 통일교의 주요 활동에 필요한 자원을 심각하게 잠식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일본 정부의 통일교 법인 해산 명령과 더불어, 고령화된 신도층을 대상으로 한 무리한 헌금 강요는 공동체 내부의 신뢰 붕괴와 피로누적을 빠르게 가속화시킬 것입니다. 


 이미 천원궁 건축을 둘러싼 헌금 문제로 인해 식구들의 불만과 피로감은 표면화되었고, 이는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단기적인 재정 위기를 넘어, 교단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기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3. 외부 사회로부터의 고립 


 천원궁은 그 규모와 외형면에서, 일반적인 종교 시설과는 현저히 이질적인 인상을 줍니다. 사치스럽고 과시적인 외관은 외부 대중에게 “이것이 과연 하나님을 위한 성전인가, 아니면 특정 지도자를 위한 궁전인가?”라는 의문을 강하게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로서의 겸손과 경건함보다는, 제국적 권위주의와 개인 숭배의 이미지가 더욱 뚜렷하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특히 종교인, 일반 시민, 청년층에게 통일교가 ‘권력화된 종교,’ ‘폐쇄적인 체제’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고 있으며, 이는 통일교의 사회적 신뢰도와 대외 활동의 정당성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입니다. 결국 천원궁은 일본 정부의 통일교 법인 해산 명령에 뒤이어, 통일교 내부의 신뢰만이 아니라 외부 사회와의 관계에서도 심각한 부정적 파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처럼 천원궁은 한학자 총재의 신학적 일탈과 권력 강화의 시각적 상징이며, 공동체 내부의 신학적 혼란과 외부 사회와의 소통 단절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정적 계기입니다. 그 결과, 통일교는 지금 신학적 정체성의 붕괴로 인한 식구들의 이탈, 재정적 위기와 공동체의 피로, 그리고 외부 사회로부터의 고립이라는 삼중의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 찾는 ‘본래의 길’ 


 이러한 복합한 위기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단지 절망에 머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본래의 길’로 돌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를 직시하고, 무엇이 참이었는가를 돌아볼 때입니다. 이제 식구들은 침묵과 외면을 거두고, 현재의 흐름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함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결정적 시점에 서 있습니다. 


 한학자 총재는 자신에게 부여된 섭리적 위치—‘하나님의 딸’, ‘문선명 참아버님의 아내’, ‘참가정과 인류의 어머니’—와 책임을 외면하고 배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원리와 섭리적 기반 없이 독자적인 신학과 권위 구조를 만들었고, 그 결과 통일운동은 깊은 혼란과 분열 속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문선명 참아버님의 사명과 권위를 온전히 계승하고, 이를 이 시대에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참된 지도력 아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과 하나되어 다시 섭리의 길 위에 서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잃어버린 길을 되찾고 통일운동의 미래를 새롭게 열 수 있습니다. 


 문현진님은 오랜 세월, 하나님의 뜻과 문선명 참아버님의 꿈을 흔들림 없이 가장 선두에서 실현해 온 분입니다. 특히 2009년 이후, 한학자 총재와 통일교의 지속적인 반대와 핍박 속에서도, 단 한 순간도 중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적 중심성, 메시아의 사명과 권위, 참부모님과 참가정 현현의 섭리적 의미, 그리고 축복가정의 책임 등, 문선명 참아버님의 핵심 신학을 일관되게 계승하고 구현해 왔습니다. 


 그분이 걸어온 길은, 단지 개인의 고난이 아니라, 한학자 총재의 일탈과 배신으로 인해 초래된 통일운동의 신학적·조직적 위기를 해소하고, 참된 신앙 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 길은 많은 식구들에게 다시금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결정적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문현진님은 비전과 실적을 겸비한 리더십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력의 과시가 아닌,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이룸이룸으로써 참된 지도자의 자격과 본질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문현진님은 ‘One Family Under God’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 기반과 성과를 지속적으로 쌓아가고 있으며, 특히 문선명 참아버님께서 생애를 바쳐 실천하신 축복운동을 그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문선명 참아버님은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모든 종교 전통에 내재된 보편적 원칙과 가치에 근거하여, 인종, 국적, 종교적 장벽을 초월한 ‘하나님 아래 인류 한가족’의 새로운 평화로운 문명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반으로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들이 세워져야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이상을 고양할 수 있다고 보셨고, 이를 위해 모든 인류에게 영감을 주는 세계적인 축복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러한 확신속에서, 문선명 참아버님은 축복식을 전 인류가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에 연결되고, 타락 이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3 대축복을 실현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을 대표하는 섭리의 일환으로 구상하셨습니다. 


 그러나, 한학자 총재는 이 축복식을 왜곡시켜, 개종을 전제로 한 통일교의 독특한 의례, 혹은 통일교 신도들의 합동결혼식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더 나아가, 축복식을 한학자 총재를 ‘독생녀’로 믿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천국행 티켓’처럼 규정함으로써 문선명 참아버님의 축복운동과 축복식의 목적과 의의를 파괴했습니다. 


 문현진님은 하늘 앞에 효도하는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명을 계승하고 확장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전 세계에서 전개되는 축복운동을 통해 충실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문현진님은 축복운동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하나님 중심의 이상가정 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결혼과 가정의 보편적 이상과 신성한 가치를 보호하고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나아가 축복가정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성의 역할과 질서를 해체하고, 가정을 붕괴시키는 무신론적 세속주의 문화의 공격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로써 축복운동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도덕, 가정, 사회, 문명 위기를 해독하고 치유하는 실질적인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결단의 시간 


 사랑하는 식구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깊이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참어머님’이라고 믿고 따랐던 한학자 총재가 이제는 문선명 참아버님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현실 앞에 서있습니다. 천원궁은 그 현실을 말없이 6 증언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참아버님에 대한 배신의 상징물이라고.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배신과 허상으로 치장된 궁전의 환상을 따라 영적 파멸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문선명 참아버님의 사명과 유업을 온전히 계승하고 실천해 온 문현진님과 함께, 하나님의 섭리를 바르게 이어갈 것인가? 


 지금이야 말로 진리와 의와 선 위에 서서 본래의 길을 걸어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이 그 여정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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