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수밖에 없는 가정연합

망할 수밖에 없는 가정연합


가정연합의 위기는 돈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사람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종교가 지켜야 할 본질을 스스로 잃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종교가 생존을 위해 신앙을 이용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조직은 이미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최근 일본 가정연합이 공지한 ‘8월 성화기념 대역사 안내’를 보면 이런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성화기념이라는 엄숙한 이름 아래 조상해원, 조상축복, 특별해원, 지상인 사전해원, 미혼영인 축복 등 여러 항목이 제시되고 각각의 헌금액과 접수 일정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더구나 사전 접수와 명단 봉헌기도, ‘가상역사’라는 개념까지 동원된다.

문제는 행사의 이름이 아니다. 신앙과 헌금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느냐이다.

신앙이 돈으로 환산되는 순간

종교의 헌금은 신앙의 자발적 표현이어야 한다. 그런데 해원이나 축복, 영적 문제의 해결을 일정한 금액과 연결하고, 대상자를 확대할수록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조상의 범위와 영적 대상의 숫자를 사실상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면 신자는 언제까지나 ‘더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 번의 헌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대역사, 다음 해원, 다음 축복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신앙의 성숙이 아니라 끝없는 지출의 구조가 될 수 있다.

종교가 사람에게 “얼마를 냈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를 묻지 못한다면 그 종교의 미래는 어둡다.

두려움을 이용하는 종교는 오래갈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신앙인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는 방식이다.

‘이번에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조상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정성이 부족하면 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을 자극한다면 사람은 자유로운 신앙적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교리나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돌아보기보다 “당신의 정성이 부족했다”고 말한다면 책임은 끝없이 신자에게 돌아간다.

이것은 종교의 가장 위험한 모습이다. 신앙은 사람을 자유롭게 해야지 두려움에 묶어서는 안 된다.

참된 종교라면 신자에게 돈을 내기 전에 양심을 돌아보게 하고, 조상을 위해 헌금하기 전에 살아 있는 부모와 형제를 사랑하게 해야 한다. 영계의 복을 말하기 전에 오늘 이 땅에서 정직하게 살고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

성화기념일마저 돈벌이의 수단이 된다면

성화는 한 인간의 죽음을 넘어 그의 삶과 정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특히 창시자의 성화기념일이라면 그가 무엇을 위해 평생을 살았는지, 그의 가르침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되묻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런데 추모의 자리가 각종 해원과 축복 항목, 헌금액, 접수 마감일로 채워진다면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념하고 있는가?

사람을 위한 종교가 돈을 위한 종교로 변하는 순간, 외부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붕괴가 시작된다.

망하는 조직에는 공통점이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조직은 외부의 적 때문에만 무너지지 않는다. 내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지도자의 책임을 묻지 않으며, 비판하는 사람을 적으로 만들고, 충성하는 사람에게만 귀를 기울일 때 무너진다.

특히 종교는 더욱 그렇다.

말씀보다 조직을 앞세우고, 양심보다 명령을 앞세우며, 사랑보다 돈을 앞세우고, 회개보다 변명을 앞세우면 아무리 거대한 건물과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이미 쇠퇴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가정연합이 정말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새로운 모금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왜 신자들이 마음에서 떠나고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더 많은 헌금을 요구하기 전에 과거의 잘못을 성찰해야 하고, 영적인 두려움을 자극하기 전에 신자들의 양심을 존중해야 한다.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가정연합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세운 원칙을 스스로 저버릴 때 조직은 망할 수밖에 없다.

종교의 생명은 돈이 아니라 진리이고, 조직이 아니라 사람이며, 권력이 아니라 사랑이다. 헌금은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 신앙의 결과여야 한다. 조상 해원보다 먼저 살아 있는 인간의 원한을 풀어야 하고, 영계의 축복을 말하기 전에 이 땅의 가정을 축복해야 한다.

성화기념일이 진정한 성화의 날이 되려면 헌금표보다 참회의 눈물이 먼저 있어야 한다. 돈을 걷는 손보다 사람을 품는 손이 먼저여야 한다.

가정연합이 살아남는 길은 더 많은 돈을 모으는 데 있지 않다. 처음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그것을 거부하고 조직의 생존을 위해 신앙을 이용한다면, 외부에서 누가 무너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종교가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사람은 결국 그 종교를 떠난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종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냉엄한 법칙이다.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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