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 철쭉 정화제 특별대역사는 조상이 탄식할 일(조상의 소망을 망치는 조상해원 조상축복)
https://cafe.daum.net/W-CARPKorea/cSkJ/46520
청평 철쭉 정화제 특별대역사는 조상이 탄식할 일
(조상의 소망을 망치는 조상해원 조상축복)
해마다 5월이 되면
철쭉 정화제 청평특별대역사에 헌금을 바치러 식구들이 몰려간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어쩌다 조상이 탄식할 기복신앙에 빠지게 되었는지 안타까움에 답답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사후세계에 다녀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인간에게 주어진 심령과 지성으로 자연법칙 안에서 상상할 뿐이다. 사후세계에 다녀왔다고 하는
사람들의 증언들은 사후세계에 다녀온 것이 아니라, 심장이 멈추면 뇌에 혈류가 흐르는
동안에 급격히 의식이 사라져가는 의학적 현상을 심장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을 때 남아있는 기억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지구성의 대지와 바다와 공중에 펼쳐져 살아가는 생명들을 바라보면 천태만상이다. 어떻게 하나의 빛에서 하나의 바람에서 하나의 흙에서 하나의 물에서 이토록 각양각색으로 나타났는지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의 신비로움은 어떤 필설로도 형용할 길이 없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영원한 영계[1]의 삶이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집중해서 사랑과 관심을 지속하면 자신의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사정과 심정이 투명[2]하게 보이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딸인 인간이 영계를 잘 모르고 영계를 알 수 없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을 것이 확실하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어찌 영계를 알 수 없게 창조하셨겠는가? 조용히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도 당연히 든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의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지상을 경험하는 것처럼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영계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서 영계를 절절히 느끼고 경험하며 살도록
창조하신 것이 틀림없다.
밝은 빛과 따뜻한 열 그리고 에너지가 광자라는 본질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빗물이 바다가 되고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다시 빗물이 되고 눈이 되고 얼음이 되어도, 물(H20)이라는 본질은 그대로 변함이 없듯이, 구름 속에 빗물이 있고 바람에서 습기를 느끼는 것과 같이, 피조만물과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한번 태어난 개성진리체 인간은 보이는 육신과 보이지 않는
영혼이,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통하여 생명과 혈통을 이어가며, 인간의
본질인 사랑은 마음속에 영원히 거한다.
모든 피조물은 자연법칙에서 예외가 없다. 인간은
피조물 중에 하나의 존재이며 당연히 자연법칙 안에서 생존하며 인생을 영위한다. 하나님의 신성을
닮아 전개된 피조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만물은 내적 성상과 외적 형상 그리고 양성과 음성의 상호관계로 존재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이 그대로 전개되어 나타난 것이 피조만물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피조세계 전체가
하나님 자체의 온전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피조만물은 모두 성상적인 부분과 형상적인 부분이 하나되어 일체로 존재한다. 실존하는 지상세계 안에 영계[3]는 실존하는 일체로서 내재하는 성상적 영적 세계이다. 피조세계는 물질세계인 지상과 영적 세계인 영계가 일체로써 존재한다. 모든
피조물이 내적 성상과 외적 형상으로 존재하는 창조원리의 법칙에 따라, 영계는 지상의 실체세계와
똑같은 모습으로 실존한다고 보아야 한다. 지상세계를 움직이는 자연법칙을 주관하는 근원적인 힘은
하나님의 영적 사랑의 힘에서 비롯된 공의의 법칙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공의의 법칙은
하나님의 사랑의 질서이다. 그러므로 지상세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힘과 사랑의 질서에 의해서 발현된
자연법칙에 따라 실체적으로 운행하는 것이다.
마음과 몸[4]은 한 사람의 일체를 구성하는 성상과 형상으로서 마음은 몸 안에 거하며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인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영적 참사랑의 힘이
움직이면 지상세계가 움직이게 된다. 천하만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강렬하게 거하는 곳은
인간의 마음속이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천주적 공의의 법칙인 참사랑의 힘과 양심의 힘은,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소망하시는 창조목적을 지향하는 섭리의 방향으로 심적 작용을 일으킨다.
인간의 영혼은 영원[5]한 존재인가? 사람의
마음은 영원할까? 육신이 대자연의 흙으로 돌아가면 그 사람의 마음도 따라서 대자연 안에 내재된
영계로 돌아간다. 육신이 대자연의 흙으로 돌아가고 마음이 대자연의 영계로 돌아가면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6]에서 왔고,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기에 인간의 영혼이 경험한 사랑의 기억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간다.
참나무는 도토리를 맺히고 참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는 새로운 참나무가 되어 다시 대지를 뚫고 올라온다. 전에 있었던 참나무는 조상 참나무가 되어 사라졌지만, 다시
땅 위로 올라온 새로운 참나무는 조상 참나무의 속성과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자라난다. 조상
참나무는 새로운 참나무의 거름이 되고 새로운 참나무의 양분이 된다.
자연의 일부로 창조된 인간의 생애도 자연법칙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원리에서 비롯된 자연현상에서 벗어나 인간만이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자연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후손에게 교훈을 물려주고 거름이 되고 영혼의 양분이 되어 후손의 영혼을
통하여 영원히 생존한다. 즉 새로 나온 참나무는 이전 참나무의 영계의 삶이 된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예외 없이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지상에 사는 후손의 삶은 곧 조상의
영계의 삶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세계 안에서 없는 곳이 없이 편재하신 분이시지만, 특별히 가장 강력한 사랑의 영으로 거하는 곳은 인간의 마음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영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곳은 바로 가정 안의 가족관계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면, 하나님이 계신 곳은 바로 인간의 마음속이며 가정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후손의 가족관계 안에서, 영원한
기억으로 사랑의 작용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새로운 사랑의 관계를 끝없이 창조하는
것이 지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창조원리의 천리원칙이다.
지상세계에 존재하는 피조만물은 어떤 존재도 그 자체의 개체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 개체의 피조물은 사라지지만 그 개체가 경험한 사랑의 기억은 새로운
지상의 신생체 안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새로운 피조물의 개체 안에 사랑의 원인자로 투입되어
살아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상생활을 하면서 경험했던 사랑의
기억[7]은, 지상에 살고 있는
아들딸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기억되어 살아있다. 영원 이전부터 있었고 영원 이후까지
있는 실존은 사랑이다. 결국 영원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기억이다.
조부모[8]와 부모가 주셨던 사랑의 기억은 자녀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 후손들의 마음속에 간직한 사랑의 기억은 계속되고 상속되어 생명과 혈통의 핏줄을 통하여 최초의 사랑인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랑의 심정은 영원히 실존하고 사랑의
기억은 영원히 창조되는 것이다. 인간의 육신이 대자연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대자연 속에
내재한 영계로 돌아가면,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 원인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사랑의 세계에서 사랑의 기억으로 영원히 뿌리를 내리고 안착하게 된다.
지상과 영계는 동일한 일체로서 불가분의 관계이듯 육신과 영혼은 혈통을
통해 핏줄 속에서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이어가며 사랑의 기억은
영원하고 새로운 사랑의 경험을, 인간을 통해 지상과 영계가 일체 되어 끝없이 창조된다.
지금 이곳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가 있게 된 원인으로서 과거가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또한 현재가 끝없이 계속된다는 것은 현재 이곳은 미래의 원인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영원히 이어지는 세계이다. 유한한 생명과 무한한 사랑은 끝없이 연결된 영생이 된다. 천주는 지금과 이곳이 영원히 계속되는 무한한 시공의 세계이다. 곧 무한한 지상과 영원한 영계는 하나이며 지상이 영계이고 영계가 지상이다.
영계와 지상세계는 하나의 세계이다. 사랑의 힘 자체이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실체세계가 유일한 피조세계로 이해한다. 그래야 창조원리의 '하나님의 이성성상과 피조세계'와 내적 모순이 없다. 영계는 지상세계 안에 내재된 성상의 세계 즉 마음의 세계이며, 지상생활은 곧 영계생활과 일체인 것으로 이해한다.
지상과 영계는 일체이다. 지상과 영계는 일체이기에 조상들의 삶이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주었고, 우리의 삶이 조상들과 후손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고 있다. 결국 지금 이곳에서 우리들이 행하는 것은 영계에서 조상들의 영혼이 행하는 것이 되고, 미래의 후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된다. 부모의 삶이 자녀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듯이, 자녀들의 삶이 부모의 삶과 직결되어 있듯이, 후손들의 삶은 영계에 있는 조상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영계는 확실히 실재하고 인간의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것은 진실이다.
현재 지상인이 살고 있는 지상생활은 곧 먼저 살다간 조상들이 살고 있는
영계생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곳이 지상인의 마음속이고, 그러기에 조상들이 갈 곳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지상인의 마음속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영계 즉 지상인의 마음에서 사랑하며 거하시는 분이시기에, 조상들의 소원을 이루는 길은, 지상인이 참된 꿈을 위하여, 참된 사랑과 참된
양심과 참된 의와 참된 열정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진정으로 조상을 위한 창조원리적인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지상인간이 육신의 삶을 마치고 영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사랑하는 지상인의 마음속에서 지상인들과 같이 영계생활을 지상생활을 통하여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이 들어가는 신비한 영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세계와 일체로 연결된 바로 이곳에서 후손들의 삶 그 자체가 바로 조상들의 영계생활인 것이다.
또한 지상의 삶이 그대로 영계의 삶이 된다는 것은,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 자녀의 삶은 부모를 닮아 그대로 살기 때문에 자녀의 삶을 통해 부모의 영적
삶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녀가 훌륭하게 자라면 부모가 자동적으로 훌륭하신 분으로 증명되는
것처럼, 지상인간이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면 지상과 영계는 동일한 세계이기에 영계의 천국[9]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즉
지상인의 마음속에 조상들의 영혼과 사랑과 소망을 담고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후손들의 지상생활은
삶 그 자체가 그대로 조상들의 영계생활이 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간관계와 자연만물과의 관계에서, 이기심의 동기를 가지고 두드리면 지옥의 문이 열리고, 이타심의 동기를 가지고 두드리면 천국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낀다. 갈등과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스스로 지옥의 문을 두드려 지옥의 문이 열린 것이다. 양심의 문이 하나님과 조상님께서 찾아오시는 영계의 문이 틀림없다. 인간의 양심의 문 앞에 찾아오시어 양심의 문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는 용기 있는 행동이 천국의 문을 여는 것임을 믿는다.
지상에서 조상의 소망을 이루는 방법은 후손들이 오직 참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것뿐이다. 지상에 사는 후손들이 선한 노력을 다함으로써 하나님의 선편으로 부활하면, 영계의 조상들이 지상후손들의 마음속에서 강한 심정의 작용으로 협조하면서 지상인의 심정을 그대로 느끼고
공감하고 체험하기 때문에, 지상후손들이 부활한 그만큼 조상의 영혼도 그만큼 부활하는 것이 공의의
천리원칙이다. 이것이 원리에서 밝힌 부활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돈을 갖다 바치면 조상을 구원하고 조상을 축복한다느니 후손이
잘 된다느니 하는 이런 허무맹랑한 말들은 천리원칙에 맞지 않는 납득할 수 없는 비원리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사랑이다. 사랑이
영이다. 삶에서 위함을 실천하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진정한 영통이다.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고 인연도 없는 조상을 불러서 해원하고 축복까지 해주는 신통력을 발휘하는
허무맹랑한 영통은 없다.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초점은 하나님이 인간의 핏줄과 영혼에 심어주신 신성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지상생활에서 인간의 책임[10]으로 참사랑의 삶을 통하여 실체적으로 이루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고 살지 못하도록 양심을 마비시키고 참사랑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책임감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이기심을 미끼 삼아 거짓으로 현혹하는 기복적인 말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며 또한 조상에게 불효를 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바쳐 조상구원하고 돈을 바쳐 조상축복하고 돈을 바쳐
행운을 바라는 이기적인 복술[11]은, 한마디로 조상의 소망을 망치게 하는 것이며 조상들이 탄식할 일이 된다.
자기조상을 구원하기 위해 돈을 바쳐야 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라 말할 수 있는가. 자기희생의 높은 도덕성으로 전진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아니었던가. 자기중심의 자기가문을 위한 복을 비는 조상구원은 창조원리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사술이다.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면 영혼은 입이 없으니 말할 수 없다. 귀가 없으니 들을 수 없다. 눈이 없으니 볼 수
없다. 영계에서 무슨 편지를 보냈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면 영혼은 말할 수 없다. 지상생활의
인연을 따라 지상인의 마음속에서 기억되는 정신과 유업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이기적인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뱉어내는 헛소리를 영계 편지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양심이 자신의 영혼을 찌르는 사악한 망상일 뿐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인받을 수 있는 참된 메시지는, 돌아가시기 전 지상에 살아계실 때 그분이 하셨던 말씀이 그분의 진짜 말씀이고, 돌아가시기 전 지상에 계실 때 쓰셨던 그분이 직접
쓰신 글이 그분이 지상에 남겨놓은 진짜 편지인 것이다.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공자님,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지상에 살아계실 때 말씀하셨던
그 말씀들이 그분들의 진짜 메시지인 것이다.
특별히 지상생애에서 일생에 품은 위대한 뜻을 위해 헌신한 인물은 영계에서도
똑같다. 지상생애에서 일생에 뜻한 목표에 대한 일관된 말씀은 영계에 가서도 지상에 살아 계실
때와 결코 바뀌지 않는다. 더군다나 아담으로 오신 참아버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와 인류역사 앞에 지상에서 하셨던 말씀이 바뀔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 살아 계실 때 주신 참아버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오늘도 변함없이 들리는 참아버님의 생생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신 말씀이 예수님의 진짜 영계메시지이고, 성현들이 지상에서 하신 말씀이 그분들의 진짜 영계메시지다. 참아버님께서
살아계실 때 주셨던 그 말씀이 참아버님의 진짜 영계메시지가 틀림없다. 참아버님을 믿었다면 영계를
믿는다면 어떻게 감히 밤마다 아버님을 팔아서 영계메시지를 떠들어댈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영은 자기희생의 이타적 사랑이고 그 사랑이 가장 강력한 곳은
인간의 마음이며 가장 친밀한 사랑을 주고받는 곳은 지상생활의 가정이다. 후손의 지상생활과 조상님들의
영계생활은 불가분의 일체이다. 사랑과 정성으로 서로 위해주며 사랑의 기쁨을 느끼는 지상생활이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계생활의 참된 실상임을 믿는다.
[1] 성경,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오는 것이
아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보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신도, 임배, 마사미치, 신화시대에 관한 전승 : 천계란 여기 또는 저기로 국한되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다. 어떠한
이변도, 과분함도 없는 순수한 상태를 의미한다.
[2] 성경, 누가복음 11장 34절~36절 : 너희 눈은 몸의 등불과 같다.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겠으나 눈이 나쁘면 어둠 속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살펴 보라. 네 온 몸이 밝고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으면
마치 등불이 그 빛을 네게 환하게 비출 때와 같이 다 밝을 것이다.
[3] 성경, 히브리서 11장 4절 :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온 것임을 압니다.
[4] 유대교, 탈무드, 산헤드린 : 육체는 영혼의 집이다.
성경, 전도서 12장 7절 : 티끌로
된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고 숨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천리교, 오후데사키 : 모든 인간의 육신은 신으로부터 빌린 것이다. 그대는
무슨 생각으로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가?
[5] 과학교, 론 허바드, 생애의 새 관점 : 인간은 불멸의 영적 존재이다.
생장의 집, 감로의
법우 : 인간의 본성이 지향하는 것은 영적 삶이다. 이
영적 삶은 육신이라는 고치를 만들어 그 속에 자신의 영혼을 담기 위하여 마음이라는 실을 짜는 것과 같다. 누에가
고치를 깨고 자유롭게 날게 되듯이 사람도 그의 육신이라는 고치를 벗어버리고 때가 되면 영계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예기 : 모든
중생은 반드시 죽는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그것을
귀라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뼈나 살이 땅에 묻혀 스러지고 들의 흙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기는 하늘 위로 솟아 올라가 소명한 신이 된다.
성경, 고린도후서 4장 20절~21절 :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집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 집은 우리의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입니다.
아프리카 전통종교, 아칸족의
격언(가나) : 신은 죽지 않는다. 따라서 나도 죽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 전통종교, 비라고
디오프, 말리족의 시 : 죽은
자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살랑거리는 나무 속에 있고, 그들은 흐르는 물에 있고, 그들은 초막에 있고, 그들은 군중 속에 있다. 죽은 자들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자의 가슴 속에 있고, 그들은
울부짖는 아이 속에 있고, 불타는 횃불 속에 있다. 그들은
눈물 젖은 풀밭에 있고, 그들은 흐느끼는 바위에 있고, 그들은
숲 속에 있으며 집 안에 있다.
시크교, 아디 그란트, 가우리 : 신이 정한 인연으로, 그의 명하심으로 그대가 이 땅에 왔음을 알라. 만유가
한 덩어리 흙에서 생겨나고 모두가 한 빛 속에 거하며 하나의 생기가 만유에 두루 퍼져 있거늘, 무엇이
무엇을 슬퍼하여 우는가? 그대가 그대의 것이라 부르는 것을 잃었다 하여 슬피 우는가? 그러나 알라, 영원한 자아는 불멸이라는 것을.
유대교, 탈무드, 베라코트 : 자궁이 계속해서 출산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죽음은 또 다른 삶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미주 원주민 종교, 야키미족의
전승 : 애도자들은 영혼의 응답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그들은 죽은 사람들이 항상 그들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안다.
신도, 나카니시 나오카타, 죽음의 길에 대한 백 편의 시 : 이는
근원에서 오는 것, 이는 다시 원래 온 땅으로 돌아가는 것, 천계, 그 곳에선 영은 유일무이.
[6] 성경, 창세기 2장 7절 :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 사랑
외에는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7] 힌두교, 이샤 우파니샤드 : 덧없는 몸이 한줌의
재로 사라질 때, 나의 생기와 영혼이 불멸의 그에게로 들어 가나니, 옴, 오, 지고한
지성이여! 행한 모든 것들을 기억하라. 기억하라, 그 행위들을.
문선명선생말씀선집 : 영계는 모든 것이 지상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8] 신도, 모토오리, 노리나가, 고귀한 창에 관한 백 편의 시 : 수많은
선조들의 은혜를 잊지 말아라. 부모는 가족의 신이니라. 사람으로
태어난 자는 누구나 무릇 정성을 다해 그들을 신으로서 공경하라
하나님 꿈의 실현(문현진회장 강연문집3) : 부모님께서 함께 지상에 계시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들의 존재가 더 이상 이곳에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의 핏줄이 하나님과 참부모님과 참가정을
중심한 본연의 뿌리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어떤 계약서 상에 쓰인 약속의 때가 아니라, 핏줄에 새겨진 언약의 때라고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9] 힌두교, 바사반나 바차나 : 선을 행함이 천계요, 악을 행함이 곧 지옥이 아닌가.
[10] 힌두교, 상카라, 베단타 수트라 : 사람은 스스로 이 세상에서 지은 업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가 이생을 떠날 때 바로 그와 같이 되리라.
이슬람, 꾸란 :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행위를 그 자신의 목에 매달아 놓았느니, 부활의 날 한 권의 책으로 그에게 제시되리라. 그
때 그들은 활짝 열린 채로 그들의 업적을 보리라. 그리고 말씀이 있을 것이다. “너의 기록을 읽으라. 너의 영혼은 이 날 너에
대한 응보자로서 충분하리라.”
조로아스터교, 아베스타, 야스나 : 사악한 사람도, 의로운 사람도 그리고 선과 악이 섞여 있는 사람도 모두 현재적 실존의 법에 따라서 에누리 없는 방식으로
행하는 심판자를 만날 것이다.
불교, 마즈히마 나카야
쿠쿠라바티카 숫타 : 그가 행한 바에 따라 그가 일어나리니,
성경, 요한계시록 20장 12절 :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자들은 그 책들 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시크교, 아디 그란트, 람칼리-키-바르 : 그대가 이승을 떠날 때 신은 그대의 행업을 헤아려 셈하리니, 이 모두가 그의 장부에 낱낱이 적혀 있도다.
불교, 법구경 : 선한 일을 즐거워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기뻐한다. 스스로 행한 청정행을 보고 그는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
성경, 마태복음 18장 18절 :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1] 힌두교, 바가바드기타 : 미혹된 이들은 아귀와
귀신의 무리들에게 제사 드린다.
불교, 숫타 나파타 : 내 제자는 마법이나 주술을 행하지 않으며, 해몽이나
관상 또는 점을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시크교, 바르 소나트 : 이적을 일으키는 능력이나 주술을 즐거워 말라.
논어 : 공자께서는
궤변, 폭력, 난동, 귀신 등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불교, 디그하 니카야
케밧다 숫타 : 나는 이적기사에 위험이 있음을 아는 까닭에 이를 혐오하며 배척한다.